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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소원’ 심어주고 떠난 안병원 선생 영결식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애국가와 아리랑 다음으로 많이 부른 노래가 바로 ‘우리의 소원’ 일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당신의 소원은 무엇이요?” 라고 묻는다면 당연하듯이 “통일이요.” 라고 답하게 만드는 것도 바로 이 ‘우리의 소원’ 노래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소원’을 작곡하시고 온 국민들의 마음에 통일의 소원을 심어주고 돌아가신 고 안병원 선생의 영결식이 목요일 오전 11시 한마음성당에서 있었다.

최근 뇌출혈로 쓰러지신 안병원 선생은 지난 일요일 저녁 9시경 토론토 노스욕 제너랄 병원에서 향년 8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수요일 저녁 8시에 한마음성당에서 치뤄진 입관예배에는 원근 각지에서 400여명의 조문객들이 참석하였고, 목요일 영결식에는 5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정신을 기리며 유가족을 위로했다.

가족대표로 나온 큰아들 안승언씨는 고인을 “자상하시고 친구같은 아버지” 였다고 소개했다. “매일 전화하셔서 손주들의 안부를 물으시고, 아들이 구워주는 고기가 제일 맛있다고 좋아하셨습니다. 친구처럼 아버지와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라고 말하며 남달랐던 안 선생의 가족사랑을 자랑했다.

 

안 선생은 여러 교민단체의 활동을 했지만 특히 ‘불우 어린이 후원회’ 활동을 오래하면서 회장도 10여년간 역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선생과 수십년간 ‘불우 어린이 후원회’ 활동을 함께한 강신봉 선생은 “안 선생님은 음악뿐만 아니라 그림도 잘 그리셔서 출판을 통해 많은 단체를 도우셨습니다. 특히 저희 농장에서 저를 모델로 그린 그림이 서울 전시회에서 가장 비싸게 팔려 그것으로 불우 어린이들을 후원하는데 사용하셨다고 자랑하시기도 했었습니다.” 라며 안 선생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이진수 한인회장은 겸손한 분이셨다고 묘사했다. “참 겸손하셨습니다. 대단한 업적을 이루신 분이신데 참 겸손히 성당일도 열심히 하시고 교우들과 재미있게 지내셨습니다. 음악 활동뿐만 아니라 미술 활동도 하시면서 참 즐겁게 사셨습니다.”

임종 당일 병상을 찾은 민주평통 토론토협의회 최진학 회장은 “임종 당일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선생님이 만드신 우리의 소원은 통일 그 노래를 들려드렸습니다.” 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고인이 민주평통 행사장에서 ‘우리의 소원’ 합창을 지휘하시면서 그렇게 좋아하셨다고 회상했다. “선생님은 늘 통일을 소원하셨습니다.”

 

이번 장례는 교민사회에서는 처음으로 ‘한인 사회장’으로 치뤄졌다. 고인의 업적과 헌신의 깊이를 고려해 한인회와 여러 단체들이 협의하여 그같이 결정하였다.

또한 안 선생의 업적을 기려 미주지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문화체육부 장관을 비롯해 많은 기관장들이 조화를 보내왔다.

생전에 본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안 선생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원래는 ‘우리의 소원은 독립’ 이었다면서, 독립이 이뤄지고 나서 통일로 바꿔부르게 되었다는 역사를 설명하셨다.

우리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독립의 열망을 심어주셨고, 이제는 통일의 염원을 심어주고 가신 고 안병원 선생은 육신은 떠나셨지만 통일의 그날까지 ‘우리의 소원’과 함께 우리와 늘 함께 하실 것이다.

[윤덕현 기자, danny@worldincana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