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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주 영문 자서전 The Woman from the North(북에서 온 여인) 출판 기념회 성료

 “북한인, 남한인, 캐나다인으로서가 아닌 한국인의 정체성을 일깨워 주었다”

 

토론토 거주 탈북인으로 20기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 활동중인 김민주 씨의 영문판 자서전 The Woman From the North (북에서 온 여인, 한국어판 제목: 뿌리뽑힌 나무)의 출판기념회가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토론토협의회(회장 김연수) 주최로 5월 25일 오후 5시반 윌로데일 임마누엘교회(349 Kenneth Ave., Toronto, ON)에서 북한학 관련 교수, 대학생, 한인 단체장과 임원, 관심있는 동포들과 민주평통 자문위원 등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됐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좌절과 절망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게 될 것으로 기대하며 또 하나의 의미있는 공공외교 행사를 목표로 개최한 이번 출판기념회는 행사 시작 전 먼저 식사와 교제시간을 가졌다.

김연수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어둠의 세계에서 밝은 불빛을 갈구하는 김민주 자문위원의 인생역전 스토리를 읽고 자유와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지 느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자서전은 “북한인, 남한인, 캐나다인으로서가 아닌 한국인의 정체성을 일깨워 주었다”며 이 책을 통하여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메세지가 독자들에게 전해져 모두가 분단을 극복하고 “하나되는 한반도”가 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며 참석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평통 토론토협의회 조성용 공공외교분과 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 날 행사는 영어로 진행되었으며 요크대학 토마스 클라센 교수가 개설한 북한 섬머스쿨 수강생들, 임마누엘 김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교수, 도널드 리카드 토론토대 아시아학부 연구원 등 학계를 비롯해 송선호 재향군인회장, 김만홍 양자회 이사장, 최춘해 한인치매협회장, 김명숙 아리랑시니어센터 이사장, 이우훈 한카노인회 부회장 등 한인단체장, 임원진과 한인동포들이 참가했다. 그리고 토론토대, 요크대, UC 버클리대, 캠브리지대, 이화여대 등 글로벌 한인 및 비한인 대학생들이 민주평통 자문위원들과 함께 참가해서 북한의 실상 등 궁금했던 점을 질문하고 답변을 통하여 탈북민의 증언을 듣고 한반도 평화통일의 염원을 되새기는 모습이었다.

한편 저자와의 대화와 질문답변 시간을 마치고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드라마틱한 인생 여정을 담은 영문판 저서전 The Woman From The North와 한글판 책을 즉석 구매후 저자 서명을 받고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참가자들이 많았다. 저자와의 대화시간에는 김민주 자문위원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책에서 못다한 얘기들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자리에 서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북한을 떠나온 계기에 대해서는 너무도 긴 이야기라 여러분들이 제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리라 생각한다. 북한을 떠난것은 미리 계획한것이 아니었고 수많은 우연적인 사건들이 나를 궁지에 몰아넣었고 그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될만큼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되어 결국은 탈북을 결심했었다.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본 나의 어머니, 당시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나는 지금도 부모님들께 많은 걱정과 고민을 안겨드리고 생사의 소식도 전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신 불효에 대해 깊은 자책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언니들과 다른 식구들이 살아 있으니 그래도 위안을 얻는다.

중국에서 같은 마을에서 살던 다른 여성은 그곳에서 현재까지도 살고 있는데 모국어로 들을수는 있지만 대답은 중국어로 해야하는 슬픈 처지에 놓여있다. 그녀의 가족은 탈북하기 전에 모두 사망했고 그녀는 중국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다 잃어 버리고 중국사람도 북한사람도 아닌 그림자처럼 살아가고 있다. 어디 이뿐이랴. 수많은 북한 여성들이 고령의 중국인 남성들에게 강제로 팔려가고 또 다시 되 팔리고 인신매매의 희생자가 되여 중국땅에서 지옥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여성들이 낳은 아이들도 엄마가 공안당국에 잡혀가고 북송되어 고아 아닌 고아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비극들이 더이상 일어나지 않으려면 남과 북이 하나가 되기 위해 평화적인 교류와 협조를 통해 조금씩 문을 열어나가는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일제시대 때 금지곡이었던 노래 “봉선화”가 한국전쟁때 포로가 되었던 나의 삼촌의 목숨을 살린 이야기를 들려드리겠다. 연락병이었던 5촌삼촌은 임무수행중에 그만 한국군에 잡혀 포로가 되었다. 본부대에 후송하려면 차로 운전사와 호송원이 따라가야 하는데 포로 한 명만을 위해 그렇게 하기엔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부대장은 매일 포로를 여기 저기 끌고 다니다가 결국 사병에게 포로를 숲속에 끌고가 죽이라고 명령한다. 명령을 받은 사병이 뒤에서 총을 겨누며 따라오고 앞에서 깊은 숲을 향해 걸어가던 삼촌은 이젠 끝장이다 싶어 “봉선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뒤에서 따라오선 사병은 노래에 감동을 받아 삼촌을 멈추게 하고, ‘나도 그노래를 좋아하고 자주 불렀는데…,,갑자기 울컥해진다. 우리 예전엔 한 민족이었고 한 형제였는데 왜 지금 서로 싸우고 죽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빨리 도망가라!’ 그리고 공중에 대고 총 세발을 쏜후 삼촌을 보내고 자기는 부대로 돌아갔다.

이 영화와 같은 이야기는 실제 나의 가족 이야기이며 남과 북이 서로 대결하고 적이 되는것 보다 한 형제, 한민족으로 뭉쳐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모범적인 실화가 아닐까 싶다.
내가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도착해서 탈북인들을 위한 교육기관 하나원을 졸업하고 일주일 째 되던 날, 경찰서에서 주최하는 환영만찬에 초대받아 갔을 때 직급 높으신 분이 내게, ‘이젠 한국에 왔으니 가장 큰소원이 무었인가?, 잘사는것? 인생을 성공하는것? 아니면 남북이 통일 되는것인가?’ 하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잘사는것도 소원이기도 하지만 나의 가장 큰 소원은 통일까지는 너무 멀고 힘들겠으니 당장은 서로 교류와 협력을 하고 판문점이 열리고 서로가 자유롭게 왕래를 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나라를 거치지 않고 바로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상봉하고 부모님들의 산소를 찾아 뵙고 싶다. 또한 전쟁때 갈라진 이산가족들도 자유롭게 서로 만날수 있는 그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것이 제일 큰 소원이다’ 라고 답변한 기억이 새롭다.

10년전에 있었던 일이었지만 나는 이것이 머지 않아 현실이 될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현재 나의 가장 큰 소원은 변함이 없다. ‘남북이 하나가 되고 고향땅을 밟을 수 있는것’ 이다.”이어 질문 답변 시간을 통하여 대학생들과 평통 위원 등 다양한 질문에 김민주 위원은 본인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 중 몇가지를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Q) 만약 당장 통일이 이루어 진다면 과연 북한사람들은 행복해 할것인가 ?

A) 당연하다. 최고의 기쁨과 행복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못살고 힘든 이유가 남북이 갈라졌기 때문이라고 북에서 수 없이 교육 받았었다. 그래서 통일이 된다 라는것은 북한의 생활이 향상되고 어려운 생활이 끝날 것이라는 희망으로 주민들은 환호할 것으로 본다. 1970년대 까지만 해도 국가에서 주는 배급에서 매일 일인당 한숟가락의 식량을 덜어내어 비축했다. 그 비축용 식량은 만약에 통일이 된다면 어려운 남조선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한다고 했었다. 그 정도로 북한사람들은 남한인들보다 더 통일을 간절히 염원하며 북한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한 소원이라고 생각한다.

Q) 현재 한국의 젊은 세대는 북한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고 특히 통일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

A)젊은 세대의 통일에 대한 거부감은 통일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못사는 북한과 합치게 되면 남한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질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남북은 5천년동안 하나로 살아왔고 선조들로부터 그렇게 물려 받았다. 우리가 지금 힘들다고, 또 손해를 본다고 통일을 무시하고 거부한다면 후대들에게 분단을 그대로 넘겨주고 통일은 더 어려워 질것이다. 더 멀리, 넓게 바라본다면 통일은 우리에게 더 많은것을 가져다 줄 것이며 더 강한 하나의 나라가 될 것이다.

Q)탈북자들이 남한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

A)차별은 세계 어느곳에서나 일어나고 있다. 비단 탈북자들만 북한에서 차별 받는것이 아니다. 차별을 받으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본인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북한을 떠나 올때는 모든것을 각오했기 때문에 자신을 더 향상시키고 꾸준한 자기 계발로 차별을 극복해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차별을 받으면서 시작했지만 결국엔 주변에서 인정받고 마음을 열고 서로 동화되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Q)남한정부나 캐나다 정부에서 탈북민들에게 더 나은 정책을 펼치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는지 ?

A) 한국정부의 탈북민 정책은 어떤 불편함도 없이 아주 훌륭하고 감사할 정도로 많은 혜택이 있다. 탈북민들은 스스로 한국을 선택을 했고 찾아왔다. 그리고 한국을 위해 세금을 냈다거나 아무런 기여한 것이 없이 받기만 하면서 처음 생활을 시작한다. 남한사람들의 세금으로 탈북민들에게 특별히 많은 혜택을 주는 한국정부의 현재 탈북민 정책은 과분할 정도이다. 그 보다 더 많은 걸 바란다면 자립심이 약화되고 정부에 의존하게 되는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Q) 중국에서 어떻게 중국어를 배울 수 있었나?

A) 언어는 소통 수단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보호하는 강력한 무기이다. 중국에서 받는 차별을 이겨내는데 중국어를 빨리 배워서 그들에게서 받는 차별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불이익을 당하거나 오해, 가족간의 논쟁이 있을 때마다 억울하고 안타깝지만 언어때문에 그냥 당하기만 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언어를 빨리 습득하는것이 얼마나 내 삶에 중요한 가를 몸소 체험했다. 영어 단어를 천 개 이상 종이에 적어서 그 옆에 중국어를 쓰고 발음을 익혔고, TV를 보면서 언어를 빨리 배우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3년정도 되면서 부터는 의사소통이 좀 자유로워 졌고 그로 인해 더 빨리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Q) 캐네디언들에게 북한인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도록 설명해 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정부와 미디어를 통한 잘못된 인식이나 정보가 아닌 진짜 북한인들의 진심을 알수 있는 좋은 의견이 있는가?

A)북한인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탈북자들의 책을 많이 읽는것이 최고의 좋은 방법이 아닐가 생각한다. 내 책 뿐 아니라 수 많은 탈북민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북한인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해답을 찾을수 있지 않을까?

Q)책을 쓰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

A)여러가지 동기가 있다. 책을 읽어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내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 오면서 느낀 것은 북한생활보다 훨씬 더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함을 느끼지 못하고 우울해 한다거나 쉽게 좌절하는 모습들을 많이 목격했다. 물론 자그마한 어려움 앞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쉽게 포기 하는 경우도 많지 않는가? 북한은 헐씬 더 열악한 환경속에서 당장 저녁 한끼가 걱정이 되지만 모두가 생존하고 살아가려고 최선을 다해 애쓴다. 극과 극이 비교가 되는 극과 사회의 차이점과, 사람들에게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고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것인지 일깨워 주고 싶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컸다.